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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희호 여사… 역사적 고비마다 DJ 곁에서 격려

수많은 구속과 가택 연금에도 절대 포기 권하지 않아
DJ 사형 선고시 머리카락 한 웅큼씩 빠지며 마음고생
김대중 이희호 드라마 같았던 그들의 삶

코리아24 기자 / mokpotoday1@naver.com입력 : 2019년 0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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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희호 여사… 역사적 고비마다 DJ 곁에서 격려
수많은 구속과 가택 연금에도 절대 포기 권하지 않아
DJ 사형 선고시 머리카락 한 웅큼씩 빠지며 마음고생
김대중 이희호 드라마 같았던 그들의 삶

“현재로써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

10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남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였다.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서슬퍼런 군부 독재를 정면으로 맞섰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 여사는 그간 노환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아 왔다. 1922년 태어난 이 여사는 대표적 여성운동가로 활동하다 1962년 고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해 정치적 동지로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정치적으로 5번의 위기와 죽음에 직면한 남편과 주고 받은 옥중서신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들의 만남과 정치적 역경의 삶은 역경의 고비고비를 넘나드는 지혜가 있고 그 속에는 진정한 삶의 애환과 진실된 사랑의 힘이 내제되어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지침서가 되고 부부로 살아가는 자세를 깨우치는 철학이 있다.

정치인 김대중이 가는 길에는 풍운이 일었지만 아내 이희호는 동요하지 않았다. 김대중은 “아내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협박과 유혹을 뿌리쳤다”며 “아내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희호는 정치낭인, 대통령 후보, 야당 총재, 국가 반란의 수괴, 망명객, 민주투사의 아내여야 했다.
김대중의 망명, 연금, 투옥 등 민주화 여정에 동참해야 했다.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되는 현대사의 기적 속에는 이희호의 지혜와 눈물과 기도가 있었다.

1. 군부독재에 맞서라 주문
1972년 서슬퍼런 군부 독재 시절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10월 유신 쿠데타를 일으켜 일본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실상의 망명 생활을 할 때, 고 이희호 여사는 정보기관의 감시를 피해 보다 강력한 투쟁을 주문했다.

1971년 대선 때는 직접 연단에 올라 “여러분, 제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 만약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이른바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인생의 큰 시련이 왔지만, DJ가 지칠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이 여사였다.

김대중을 떠나보낸 이희호 여사는 홀로 남편의 유지를 받들며 10년 동안 담대하고 의젓하게 어른의 자리를 지켰다. 김대중과 이희호의 존경하고 사랑했던 7가지 일화를 뽑아서 펼쳐본다.

2. 머리 한웅큼 빠지는 옥바라지
1979년 박정희가 암살돼 군부독재 시절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신군부의 등장으로 김대중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휘말리게 됐다.

신군부는 김대중이 민주화운동가 20여 명과 북한의 사주를 받고 내란을 계획했다고 발표했다.

1980년 5월17일 또 다시 연행된 김대중은 사형을 선고 받았다. 장남 김홍일까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당시 이희호는 눈물을 삼키며 남편과 아들의 한복 수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던 무렵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 빠질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고, 지독한 관절염까지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희호는 청와대 안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독대해 남편의 석방을 당당히 요구했다. 이 여사는 DJ가 옥중에 있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편지를 썼다. 김대중은 독재와 싸우다 6년 넘게 옥에 갇혔다. 이희호의 옥바라지는 눈물겨웠다. 겨울이 와도 방에 불을 넣지 않았다. 남편이 추운 감방에서 떨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따뜻하게 지낼 수 없었다. 이희호는 날마다 기도를 올렸다. 어느 날은 냉방에서 꿇어 엎드려 기도하다가 혼절한 일도 있었다. 세탁물을 받아 손빨래를 하고, 속옷과 양말까지 다림질을 해서 향수를 뿌려 들여보냈다. 남편이 원하는 책이면 어떻게든 구했고, 남편의 석방을 위해서는 어떤 사람도 만났다.

1981년 1월 김대중을 면회 간 이희호는 아들들과 함께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사형수 남편을 향한 눈물의 기도는 절절했다.

3. 세상과 연결한 옥중서신
이희호는 김대중에게 날마다 편지를 썼다. 하지만 김대중은 한 달에 한 번밖에 편지를 쓸 수 없었다.
편지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되었다. 사연은 길고 봉함엽서는 달랑 한 장이었으니 글씨를 작게 써야 했다. 엽서 한 장에 1만4000자를 써서 보내기도 했다. 확대경 없이는 읽을 수도 없었다.

이희호의 편지는 세상의 소식을 날라다 주었고, 인내와 용기가 솟아나게 했다.

“당신도 나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형제들이 철야 기도, 산 기도, 골방 기도, 금식 기도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만일 당신이 이렇게 큰 어려움에 처해 있지 않았다면 누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기도를 드리고 있겠어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꼭 가지세요.”

가족의 안부 등 일상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남편에 대한 격려 등을 담았다. 또 당대의 철학적·신학적 논쟁거리 등 시대정신을 공유했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청한 책 외에 자신이 직접 고른 책도 한 두 권씩 꼭 전했다. 이 여사가 이때 쓴 편지는 1998년 ‘내일을 위한 기도’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당시 이 여사가 보낸 책은 600권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4.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
14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은 김영삼에게 패했다. 1992년 12월 19일 새벽 3시 김대중은 일어나 불을 켰다. 그리고 기도를 올렸다. 아내 이희호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대중이 입을 열었다.

“민주주의와 정의와 통일을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바쳤소. 나의 이런 노력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잘 알 것이오. 그런데도 다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소.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 결연하게 정리하려고 하는데 당신도 동의해 주었으면 좋겠소.”

이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러운 새벽이었다. 남편은 생각을 가다듬고 아내는 구술을 기다렸다. 이희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은퇴성명은 이렇듯 눈물로 작성되었다. “저는 오늘로써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시민이 되겠습니다. 이로써 40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말을 고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습니다.”

5. 대통령 퇴임 후의 삶
2003년 2월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을 초청해 만찬을 할 때였다.

이희호가 처음으로 대통령직 퇴임을 앞둔 남편 얘기를 했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희호는 남편보다 먼저 잠들지 않았다. 남편이 잠자리에 들어야 비로소 하루를 마무리 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희호는 새벽까지 보고서를 읽는 남편에게 호소했다. “제발 오늘 안에 주무세요.”

김대중과 이희호는 이명박 정부의 폭주에 분노했다. 아내 이희호와 분연히 맞서자고 손을 잡았다.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내와 같이 다짐했다. ‘우리가 정치에서 은퇴한 지 오래지만 오늘의 현실 즉 반민주, 반국민경제, 반통일로 질주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50년간의 반독재투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형, 학살, 투옥, 고문을 당하면서 얻은 자유이고 남북화해였던가! 그 자유와 남북화해가 무너지고 있다.

늙고 약한 몸이지만 서로 비장한 결심과 철저한 건강관리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오늘의 역주행 사태를 보면 지하의 열사들이 고이 잠들지 못할 것 같아 가슴 아프다.”(2009년 2월 23일 일기)

퇴임 후 동교동에는 소소한 행복이 찾아왔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 그저 좋았다. 일기에는 정과 사랑이 듬뿍 들어 있다. “나는 행복하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김대중은 아내에게 농담을 자주 건넸다. 다소 썰렁해도 이희호는 크게 웃었다. 늦은 밤 침대에 걸터앉아 노래를 불렀다. <고향의 봄>과 <사랑으로> 노래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박근영기자

목포투데이 제공 http://www.mokpo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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